당신이 암호화폐 세계에서 얼마간의 시간을 보냈다면 이 곳에서 대시는 검은 양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의 론 폴(Ron Paul)처럼, 대시는 대시보다 훨씬 작고 덜 개발되었으며 덜 유망한 프로젝트에 비해 계속 배제 당하고, 무시 당해왔다.  당신이 비트코이너들로 가득한 방에서 대시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방이 싸늘해지는 걸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이 얼마나 기분을 망치는 일인가.

 

그렇지만, 언제나 이런 식일 것이다. 대시는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암호화폐 커뮤니티에서 존중을 얻지 못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배제가 현실적인 것들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의 암호화폐 프로젝트들은 고르지 않은 출발을 하고, 훨씬 빈약한 공급 분배를 즐기는 수준이기 때문에 초기 마이닝 버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또한 대시의 프라이빗 기능과는 상관 없는 일이다. 대시의 프라이빗 기능은 지금까지 깨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으며 어떤 익명 기능도 갖추지 못한 채 시작한 몇몇 프로젝트보다는 훨씬 앞서 있다. 또한 이러한 프로젝트들은 전혀 분산화(탈중앙화) 되어 있지 않다. 반면 대시는 단일 행동 주체나 그룹의 부당한 영향력에 저항하는 다양화된 생태계를 가지고 있다. 대시가 비트코인 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는 것은 기술적인 측면 등 어떤 현실적인 것과도 관계가 없다. 오직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것일 뿐이다. 다음에서 이유를 살펴보자.

 

급진적 운동이 작고 고립된 파벌로 변화하다

 

암호화폐 운동은 올드스쿨 사이퍼 펑크(Cypher Punk)와 암호화폐 무정부주의자와 같은 주변인 그룹에서부터 시작하였다. 이 하드코어 지지자들로 구성된 초기 그룹들은 비트코인을 언더그라운드 프로젝트에서부터 세계 무대로 쏘아 보냈다. 그 이후로 그 존재와 브랜드 이름이 크게 성장했지만, 그 사용자층은 여전히 이 비트코인 본래의 특성에 찬사를 표한다. 비트코인의 내전에서는 코어/블록스트림 측이 끊임없이 사이퍼 펑크의 사회적 정체성에 호소하였으며 이는 확실히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는 암호화폐의 나머지 중심 그룹과 그들의 커뮤니티에까지 연결되었다. 대시나 비트코인캐시와 같은 예외가 있지만, 이와 같은 반대 의견의 존재한다고 해서 우세한 테크노 파벌이 압도적으로 승리했다는 사실을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그 결과는 이 사이퍼 펑크 정체성에 초점을 둔 배제주의적 소수 문화였다. 비트코이너들은 모두에게 거부당한 파벌 문화를 모든 이가 받아들일 만한 더 좋은 결과물로 만드는 대신, 자신들이 거부당한 방법으로 외부인을 거부함으로써 그 파벌 상태를 크게 강화하였다. 이는 “모든 이들이 비트코인을 사용해야 한다”에서 “너는 우리랑 함께 앉을 수 없어”라는 식의 접근 방식의 급진적 변화를 나타낸다. 기술은 고사하고, 이 “잘나가는 아이들”과 관련 없는 어떤 코인이라도 영원히 이들 그룹으로부터 조롱을 받게 된 것이다.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것은 ‘사기꾼의 판매 방식’으로 치부된다

 

고립된 사회 집단이라는 주제 다음에는 일반인에게 호소하려는 시도에 대한 명백한 적대감이 있다. 따라서 비트코이너의 일반적인 감정은 다음과 같다: “너희 정상인들은 우리를 수년간 놀려왔지만 이제 우리는 부자인데다가 영향력도 있지. 우리의 성공에서 부스러기라도 얻어 가려면 우리에게 와야 할걸?” 이와 같은 사고 과정이 아예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대중적 사용을 위한 접근법으로서 이와 같은 사고방식은 해당 프로젝트를 죽이는 것이나 다름 없다. 사람들의 재정적 행동을 급격하게 변화하려는 것은 매우 어려운 명령이며, 적대적인 기술적인 새로운 문화를 통해 이와 같은 변화를 이루어 내려는 시도는 극도로 희박한 성공 가능성을 지닌다. 누구에게든 다가가기 위해서는 그들의 수준에서 대화해야 한다.

 

대시는 이를 알고 있었다. 또한 다크코인에서 브랜드를 변경한 이래로 커뮤니티와 개발자들은 모든 사람들이 대시를 사용하도록 만들겠다는 궁극적인 목표에 집중해왔다. 이 일반적인 “머글”에 대한 서곡은 비트코인의 신성한 문화에 대한 일종의 배신으로 간주되었으며, 회의론자들이 초기에 그 가능성을 무시하는 것이 옳았음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또한 사용자 친화적인 인터페이스, 브랜딩, 그리고 사람들이 문화에 적응하도록 돕는 과정은 새로운 기술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들에게 ‘사기꾼’으로 보인다. 그 생각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만일 당신이 완전한 초보자에게 암호화폐를 판매한다면, 당신은 이에 관해 약간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팔 수 없기 때문인 것이다’. 이러한 생각의 선상에서, 만일 이 암호화폐가 복잡하고 사용하기 어렵다면, 이는 아무도 속일 수 없기 때문에 ‘의로운’ 것이 된다. 대시의 접근법은 이와는 정 반대의 것으로, 모든 평범한 사람들이 이용하는 코인을 만들고자 하는 목표는 회의적으로 보여진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감사하는 사람은 없다

 

이제 업계에서 가장 큰 심리적 오해 중 하나인 ‘전문 기술은 일차원적이다.’에 관해 생각해보자. 일반적인 통념에 따르면 당신이 설계할 수 있는 세그윗이 더욱 복잡할 수록, 혹은 당신이 더 많은 부품을 제작하면서 블록 크기를 1 비트 증가시키지 않고도 라이트닝과 결합해 만들 수 있다면, 더 기술적이고 요령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식과 기술에는 많은 다른 종류가 있으며, 대시가 암호화폐 공간에서 가장 선견지명 있는 프로젝트 중 하나이지만, 대시가 중점을 두는 영역에 관해 기술이나 역량이 없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하드포크 업그레이드의 지저분하고 파괴적인 내재적 문제를 목격하기 이전에는 스포크의 천재성에 감사할 수 없다. 어느 누구도 결제 취소로 인해 돈을 잃게 되는 사업주의 스트레스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1.3초 만에 영구적으로 저장되는 거래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확장성 솔루션이 밝혀지기 수 년간 혼잡하고 망가진 네트워크에서 사용자가 겪는 고통을 이해하기 전에는 대규모 온-체인 확장성 문제에 관해 철저히 조사하거나 연구하지 않는다. 또한 믿을 수 있는 돈의 원칙과 스스로의 자금을 제어하는 것의 가치에 관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자신의 돈과 유동성을 장기간 지불 채널에 맡기는 일은, 그것이 무기한이 아닌 한 그렇게 나쁜 생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기술적이지 않은 측면이나 프론트엔드의 측면 조차도 상당한 수준의 전문 기술과 지식을 필요로 하는데, 이러한 기술과 지식은 자신들만의 코딩 왕국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 완전히 무시당하고 있다. 약간 각도를 줄이고 조금 더 부드러운 색깔로 로고를 채우는 것 역시 심리적 영향을 미치며 이는 곧 더 많은 사용자가 제품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한 전략적 로고 배치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해당 브랜드에 익숙해지고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를 향상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기관 투자자와 전통적인 주식 투자자들이 대시의 인프라에 투자할 수 있게 하는 상장 회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통적인 암호화폐 거래소를 사용하도록 강요하는 것 보다 더 많은 사용자를 끌어들일 수 있다. 또한 마지막으로 이름과 사회적 네트워크와 관련된 인간 심리를 활용한 인터페이스는 예쁘지도 않고 복잡하기만 한 공개 키 주소를 사용하는 것 보다 훨씬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것들은 대시와 같이 장기적 성공을 누리는 프로젝트들에게 매우 중요한데, 이들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최대한 자주 사용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 분야에 무지한 커뮤니티는 이러한 아름다움과 품위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것은 반대다: 대시가 더 많은 것들을 달성할 수록 더 많은 사이퍼 펑크들은 절망적일 정도로 무능하게 남을 것이며, ‘뭔가 구린 구석이 있는’것으로 보이게 될 것이다.

 

사토시 추종은 강력하다

 

때로는 인정하기가 어렵긴 하지만, 암호화폐 세계는 어느 정도 종교적인 구석이 있다. 신화적인 인물 사토시 나카모토가 벼랑간 나타나더니 암호화폐 천국에 오르기 전에 자신을 희생하여 인류에게 놀라운 창조물을 선사한 것이다. 또 사람들은 그가 돌아오리라는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 비트코인은 천재적 작품이며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고 탄탄한 상품으로, 세상에 한 획을 그었으며 (계속해서 시장을 지배해나가고 있고) 사람들의 이러한 믿음에 대한 증거로서 남아 있다. 암호화폐 추종 문화에서 비트코인은 언제나 먼저 등장한다. 사토시는 절대 틀림이 없으며 그의 창조물은 그 후에 나온 어떤 것들 보다 더 큰 존경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은 이러한 우세적 태도를 탑 올드스쿨 코인들에게서 볼 수 있다. 이더리움은 (비트코인과 비교할 때) 완전히 다르면서 비경쟁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었고, 라이트코인은 스스로를 비트코인의 조력자로 만들었으며, 모네로의 주요 개발자는 비트코인 코어 개발 팀에게 끊임없는 경의를 표하고 있다. 이러한 프로젝트들은 사토시에 대한 찬양의 노래에 위배되지 않는 한 성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대시에게 까다로워지는 부분이다. 비트코인 코드를 기반으로 하여 만들어졌으며 비트코인의 성공을 기초 모델로 하여 만들어진 대시는 (비트코인을 뛰어넘어) 최고가 되려는 시도로 인해 이단 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대부분의 대시 커뮤니티가 비트코인에 관해 어떤 문제도 삼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비트코인과 공존하는 것을 환영하는 입장이지만, 최고의 지불 암호화폐이자 세계 최고의 돈이 되겠다는 두드러진 목표로 인해 대시는 그 조상과 일종의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된다. 사이퍼 펑크 암호화폐 커뮤니티의 관점에서 대시는 태양에 너무 가깝게 다가갔던 전설적인 이카루스이며, 그 오만함과 자만심은 엄청난 충돌로 처벌 받으리라는 것이다. 궁극적 성공이라는 이 목표로 인해 대시는 영원히 그 암호화폐 형제들의 노여움을 얻게 되었다.

 

전 세계가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하더라도 변화하지 않는 것

 

현재 암호화폐 공간은 대시를 가치 있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변화할 일은 거의 없음에 주의해야 할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대시는 더욱 대중적인 지불 시스템이 될 것이며, 탑10 암호화폐를 모두 더한 것 보다 많은 거래를 처리할 것이다. 그 성공의 수준은 중요하지 않다. 상기의 이유들로 인해, 얼마나 성공하든 간에 OG 암호화폐 너드 소셜 그룹으로부터의 배제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대시는 해당 암호화폐 분파에 의해 사랑 받거나 존경 받지 못할 것이다. 이 얼마나 실망스러운가. 대시가 지구상의 주요 부문에서 일상적 지불 시스템으로 사용되는 날이 바로 오래 전 유치원의 잘나가는 아이들에게서 차여 울던 날에 관해 회상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